서울의 중심, 종로는 단순한 번화가를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해 온 살아있는 역사 공간이다. 특히 이곳의 오래된 서점과 다방들은 오랜 세월 동안 지식인과 예술가, 청년들이 모여 지식을 탐구하고, 사상을 교환하며, 낭만을 즐기던 문화의 산실이었다. 종로는 광화문과 인사동, 청계천 등 주요 명소와 인접해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속에서 서점과 다방은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많은 것이 사라지고 변했지만, 종로의 서점과 다방은 여전히 우리에게 과거의 향수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 글에서는 종로의 대표적인 서점인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고, 한때 지식인들의 아지트였던 옛 다방들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한다. 종로의 서점과 다방을 통해 우리는 서울이 품고 있는 지성과 낭만, 그리고 변화의 흔적을 함께 탐험할 수 있을 것이다.
종로, 지성의 상징: 오래된 서점들의 이야기
종로는 예로부터 학문과 지식의 중심지였다. 조선 시대에는 성균관과 육조거리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근대에 들어서는 수많은 학교와 학원, 출판사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서점들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은 종로를 대표하는 서점이자, 한국 출판 문화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온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1981년 개점 이래,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정신 아래 한국 최대의 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교보문고는 단순한 책 판매 공간이 아니었다. 거대한 규모와 방대한 장서량은 당시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시민들에게 지적 탐구를 위한 열린 공간을 제공했다.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교보문고를 찾아 책을 읽고, 친구와 약속을 잡는 등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활용했다. 특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서점'이라는 파격적인 시도는 독서 문화를 크게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다가 피곤하면 앉아서 쉬고, 궁금한 점은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교보문고는 지식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한, 서점 내 갤러리, 강연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며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했다. 오늘날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지성의 상징이자, 서울의 중요한 랜드마크로 남아있다.
반면, 종로서적은 교보문고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서점이었다. 1907년 '조선서적상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래,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한국인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특히 1960~7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과 지식인들의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학생들은 종로서적에서 금서(禁書)를 몰래 구하고, 삼삼오오 모여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민주주의의 열망을 키웠다. 종로서적은 단순한 책방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고 미래를 논하던 '운동의 공간'이자 '사상의 요람'이었다. 수십 년간 종로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던 종로서적은 2002년 아쉽게도 폐업했다.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출판 시장과 오프라인 서점의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2016년, '종로서적'이라는 이름이 다시 부활하여 교보문고 종로점 지하에 문을 열었다. 비록 과거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종로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잇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받고 있다. 종로의 서점들은 이처럼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침을 겪었지만, 여전히 지성과 사상의 전당으로서 종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시간: 옛 다방의 풍경과 변천
서점과 함께 종로의 지성사를 이끌었던 또 다른 공간은 바로 다방이었다. 1950~70년대, 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문인, 화가, 연극인 등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작품을 논하며, 때로는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살롱이자 아지트였다. 종로의 다방들은 지식과 예술의 최전선이었으며, 새로운 문화와 사상이 싹트던 곳이기도 했다.
당시 다방의 풍경은 오늘날의 카페와는 사뭇 달랐다.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놓여 있었고, 텁텁한 담배 연기 속에서 커피 향이 피어올랐다. 레코드를 틀어 음악을 들려주거나, 미모의 '레지'가 직접 주문을 받고 커피를 가져다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방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던 공간이었고, 연인들에게는 은밀한 데이트 장소였으며, 때로는 정치적 밀담이 오가던 은밀한 장소이기도 했다. '학림다방', '돌체', '국제다방' 등 종로에는 수많은 다방들이 각자의 개성과 역사를 가지고 존재했다. 특히 1956년 개업하여 '대학로의 명물'로 불리는 학림다방은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옛 다방이다. 김지하, 김민기, 이문열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이곳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고,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낡은 LP판과 오래된 가구들이 풍기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패스트푸드점과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들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다방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사람들은 저렴하고 빠르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다방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많은 다방들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했으며, 이제 옛 다방의 모습은 서울의 오래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림다방처럼 옛 모습을 지키며 명맥을 이어가는 곳들은 종로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영업장이 아니라, 특정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공간이자, 젊은 세대에게는 옛 시대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남아있다. 종로의 다방들은 커피 한 잔에 담긴 시간을 통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나누었던 꿈과 열정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기억의 공간, 변화의 기록
종로의 서점과 다방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겪어온 변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기억의 공간이다. 서점은 지식의 대중화와 민주화 운동의 아픔을, 다방은 예술과 낭만, 그리고 사회 변혁의 열망을 품고 있다. 이 공간들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고민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절망했던 삶의 총체적인 기록인 셈이다.
급변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종로의 옛 서점과 다방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겪었다. 어떤 곳은 사라져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고, 어떤 곳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으며, 또 어떤 곳은 꿋꿋이 옛 모습을 지키며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가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과거의 소중한 유산들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공간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키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종로의 서점과 다방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가 얼마나 깊은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지 일깨워주며,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치 않는 지성과 낭만의 가치가 무엇인지 되새기게 한다.
이제 종로를 방문할 때, 거대한 빌딩 숲과 번잡한 거리 풍경 너머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곳에는 여전히 수십 년, 혹은 백 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점과 다방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공간에 들어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책 한 권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종로가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종로의 서점과 다방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